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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ours 번역

step to you (요우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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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to you

 

작가: Gibbs (http://www.pixiv.net/member.php?id=20399676)

원문: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7305496

 

번역: -(d4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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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짝 열어 둔 창문으로부터 가을 바람이 넘실댄다.

 펄럭거리는 진홍색 머리칼을 부여잡으며 한숨을 쉬는 그 옆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 나는 작품을 감상하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학교가 끝난 뒤의 교실엔 웬일로 나와 그녀 뿐이었다.

 언제나 적어도 우리 둘 중 한 명과는 붙어 있는 감귤파 친구는 교무실로 불렸다는 듯, 종례가 끝나자 짐도 내팽개치고 교실을 내박찼다. 다른 아이들도 눈 깜짝할 순간에 뿔뿔히 흩어져 결국 나와 그녀만이 남았다.

 단 둘만의 공간에서 한 마디 대화도 없었지만, 신기하리만치 편안했다.

 

 나와 그녀 사이엔 충분한 거리가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그 옆모습은 저 멀리 있어, 쉽게 닿지 못할 거리였다.

 한 걸음 간다고 닿지는 않겠지. 두 걸음도, 세 걸음도. 아아, 그렇지만 멀리뛰기로 가면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 속으로 궤적을 그려 본다.

 저기까지 도움닫기를 하고, 저기서 땅을 박차면. 하나, 둘 하고.

 

 요우쨩?”

 !”

 

 시기 부적절하게도 마주친 날카로운 눈매에, 세 번째 걸음의 도약은 실패로.

 균형을 잃은 머리 속 나는 책상 위로 머리부터 우당탕탕이다.

 

 아까부터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아서. 무슨 일 있어?”

 , 아니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

 

 갸웃대는 고개에 맞추어 기다란 머릿결도 살랑댄다.

 어째서 이런 소박한 행동마저 격식 있다고나 할까, 어울리는 것일까.

 품격 없이 책상에 턱을 괴며, 멍하니 그런 생각에 잠긴다.

 리코쨩은 이런 면이 너무나도 여자아이다웠다. 나와 같은 생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요우쨩이 그렇게 멍하니 있다니 별일이다 싶어서.”

 

 쿡쿡대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흔들린다. 웃음까지 고급스럽다. 웃음을 샀는데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도시에서 자라서 그런 걸까. 리코쨩은 꼭 부잣집 아가씨 같아.

 나의 사고는 끝도 없이 불필요한 부분을 맴돌고 있었다. 바보 같은 나의 머리통은 복잡한 연산을 하지 못했다.

 

 기운 넘치는 요우쨩이라도, 가끔은 멍을 때리는 거라구요.”

 후후, 그렇구나. 혹시 내가 방해했니?”

 아냐, 그런 건.”

 다행이네.”

 

 덜컹, 자리에서 일어나 리코쨩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한 걸음, 두 걸음. 역시 세 걸음으론 닿지 않을 거리.

 멀리 뛰기 위해선 도움닫기와 도약이 중요하지. 그보다, 무슨 생각 중이었지.

 

 요우쨩.”

 ?”

 다크서클.

 ?”

 

 지적받은 건 금세 잊은 채 다시 생각에 잠겨 있었더니, 흰 손가락은 슬쩍 내 뺨을 훑었다. 부드럽게 눈가를 매만지는 손가락.

 다크서클. 내 눈 밑에.

 아아, 그렇구나.

 

 무리하면 안 돼.”

 고마워. 리코쨩도야, 알겠지?”

 

 그것에 응답하듯 나는 내 뺨을 어루만지는 조금 차가운 손에 내 손을 얹고 고개를 들었다.

 충혈되고 부은 눈.

 누가 보아도 피로가 쌓인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다음 콩쿨에 쓸 곡을 거의 다 완성했거든.”

 , 나도 이제 곧 다이빙 대회라서 말야.”

 몸 관리는 잘 돼 가나요, 와타나베 선수?”

 당근이죠!”

 

 너무 오래된 말투 아니냐며 웃음을 나누고, 부드럽게 손을 맞잡았다.

 

 신비로운 감각이었다. 만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친해진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따스함을 알고 있던 것만 같은, 묘하게도 나를 데우는 체온.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치카쨩, 카난쨩과는 또 다른, 안심감.

 

 요우쨩 손 따끈따끈해. 피곤한 거지?”

 실은.”

 아까부터 눈이 반 쯤 감겨 있었어.”

 리코쨩도 한숨이나 쉬고 있었으면서.”

 에이.”

 진짜야, 다 봤어.”

 왜 그런 걸 지켜보는 거야? 변태.”

 

 나머지 한쪽 손이 곧바로 내 뺨을 꼬집는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리코쨩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했으니 무섭지도 않았다.

 

 리코쨩이 변태라고 부르다니, 뭔가 야한데.”

 그런 발상이 변태 같다는 거야-”

 , 또 그런다.”

 

 큭큭, 하하. 누가 보면 뭐가 웃겨서 자꾸 웃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의 입꼬리는 풀린 채로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아까부터 계속 실실 웃기나 하고, 요우쨩 이상해.”

 아니, 그게. 기뻐서 말이야.”

 뭐가?”

 리코쨩이랑 만나서 친해졌다는 게.”

 

 한 순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리코쨩은 곧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나도 우치우라에 와서, 요우쨩이랑 만나서 정말 기뻐.”

 

 뾰족한 눈매도 부드러워졌다.

 기쁜 듯이,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아름다운 호를 그렸다.

 으음, 너무해.

 이렇게 가까이서 이런 귀여운 표정을 본다면 리코쨩을 더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러니까.

 

 그 표정은 금지야.”

 ?”

 너무 귀여워서 보는 사람들이 모두 리코쨩한테 빠져들 테니까.”

 정말, 요우쨩도 참, 무슨 말을꺄악.”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리코쨩을 끌어당긴다. 균형을 잃고 엎어질 뻔 하는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댄다.

 

 내 전용이야. 알겠지?”

 

 치카쨩, 곧 돌아오려나. 지금 이 리코쨩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나만의 리코쨩으로 있어 줬으면 해.

 

 와인 레드의 윤기있는 머리칼을 휘감아, 새하얀 목덜미에 살짝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으읏, 이라니. 자기도 모르게라도 그런 목소리는 내면 안 돼. 눈 앞의 못된 늑대가 잡아먹어 버릴 테니까.

 

 아아, 겨우 자제할 수 있는 거리를 벌려 놨는데, 아무리 뛰어 봤자 닿지 않을 거리에서 바라보며 참고 있었는데. 리코쨩이 먼저 다가오다니.

 

 요우, .”

 

 , 안 되겠어. 왜 그런 목소리로 부르는 거야? 안 된다니까. , 치카쨩 빨리 돌아와 줘.

 더 이상은 역시 안 돼.

 

 

 기다렸지!”

 

 드르륵 기세 좋게 문이 열린다. 언제나 기운 넘치는, 사랑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교실을 잔뜩 메운다.

 

 왔구나, 꽤 오래 걸렸네.”

 “’뭔 놈의 공결서를 이렇게 써!’ 라면서 선생님한테 혼나는 바람에헤헷.”

 아하하, 그럴 수도 있지.”

 ? 리코쨩 얼굴 좀 빨갛지 않아? 괜찮아? 열 있어?”

 

 터벅터벅 걸어온 치카쨩이 멍하니 서 있는 리코쨩의 이마와 뺨을 더듬는다.

 열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 괜찮아. 치카쨩.”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리코쨩이 우스워서 그만 웃음을 흘리자, 살기가 느껴지는 시선이 쏟아졌다. , 너무 무섭다.

 

 , 그럼 부실로 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어!”

 아으지각이라니, 다이아 선배한테 혼나겠어.”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하면 괜찮아.”

 

 재빨리 짐을 챙기고 교실을 뛰쳐나간 치카쨩을 따라가려 하자, 갑자기 누군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나를 끌어 세운 범인이 누군지는 자명했지만.

 

 리코쨩?”

 

 대답이 없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도 보이지 않았기에 내가 먼저 리코쨩에게 다가섰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도약하기 직전, 정면으로부터 가벼운 충격. 겨우 균형을 잡아 한 걸음 물러선다.

 

 지근거리. 다시 한 번 예기치 못한 근접으로부터 느껴지는 체온.

 아름다운 헤이즐넛 색 눈동자가 젖어 있었다.

 

 요우쨩이야말로, 다른 사람한테는, 그러면 안 돼.”

 

 , 자비 없는 일격에 날아간 나는 이번엔 정말로 균형을 잃어, 책상에 우당탕탕.

 나를 넘어뜨린 범인은 직전에 교실을 탈주해 도주중.

 범인을 추적하라고? 어림없는 소리.

 

 당했다….”

 

 얼굴이 달아올라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일어날 기운도 나지 않아, 짐을 내팽개친 채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다.

 

 연습 지각은 확정, 다이아 선배의 설교 또한 확정. 그리고 오늘 쭉 그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도.

 

 -, 덥다.”

 

 창 밖으로 기우는 태양. 커튼을 부풀리는 초가을 바람.

 

 

 이미 시야를 벗어난 그녀를 붙잡기까지, 이제 몇 걸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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