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신호의 뺨 (린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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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신호의 뺨
赤信号の頬
글: 鏡 (http://www.pixiv.net/member.php?id=12625327)
출처: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5034500
번역: 낮-꿈 (d4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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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린. 이건 비밀이야."
신호가 파랗게 변한다. 그것은 '당신은 여길 지나가도 좋습니다' 라는 신호이므로, 린은 곧장 커다란 발걸음을 내딛었다.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이 도로는 정말 신호등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차가 적었다. 하지만 물론 신호를 무시하는 무서운 짓은 하지 않는다. 린은 착한 아이니까.
"린."
하지만 그런데도 딱딱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린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린은 어쩔 수 없이 멈춰서 뒤돌아 섰다. 신호는 아직 파란불이어서, 이렇게 차들도 멈추어 있는데, 아무 문제도 없는데. 없을 텐데. 돌아본 곳에 서 있던 마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데서 멈추면 위험하잖아."
지나가면 붙잡을 수 없도록 뒷머리가 없다는 기회의 여신과는 달리, 비록 짧지만 린은 확실히 머리카락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듣고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까 걸었던 만큼 다시 뒤돌아와야 했다. 아아, 아까워라.
"신호가 바뀌었다고 해서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건너는 건 위험해."
팔짱을 끼고, 린을 노려보는 마키의 눈동자는 그래도 부드럽다. 목소리에 잔뜩 돋아난 가시와는 반대로 실은 린을 생각해서 해 준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린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마키쨩…"
그래도 순순히 받아들이긴 억울해서 뭔가 반박하려고 했지만, 이을 말이 없었다. 마키쨩의 퉁명스런 다정함에 제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저녁 5시인데 주위는 온통 어둑어둑해서, 아까까지만 해도 아른거리던 노을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봄이라고 아침 뉴스에서 말했는데.
호노카, 코토리, 우미는 학생회로, 에리랑 노조미는 학생회 일을 도우러, 니코는 동생들을 돌봐야 해서, 그리고 하나요마저 볼일이 있다고 하니 역시 μ's의 훈련은 쉬게 되었다. 그래, 그러니 오늘은 단 둘 뿐이다.
운동장의 모래를 잔뜩 뒤집어 쓴 아스팔트에서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 괴로운 듯한 소리가 린의 신발 바닥에서 난 소리라는 사실에 놀란다.
"저기, 마키쨩. 린은…"
…추워서 빨리 돌아가고 싶어.
린은 그런 그럴듯한 거짓말을 한다. 그래, 거짓말이다.
거짓말에는 자신이 없었으니, 마키쨩에게는 분명 들켰을 것 같았다. 린이 빨리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추워서도, 졸려서도, 어두워져서도 아니었다. 카요찡도 여기 같이 있었다면 린은 제대로 좌우를 살피고 횡단보도를 건넜을 것이다.
"저기, 마키쨩."
…빨리 돌아가자.
린은 그렇게 말했다. 어느샌가 신호는 빨간불이 되어서, '빨리 돌아가자' 고 뭐고 소용 없게 되었지만.
마키쨩과 단 둘이 하교. 린은 그런 뜻밖의 사건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린, 그렇게 횡단보도에 가까이 있으면 위험해."
생각에 잠긴 체 하던 마키쨩이 서서히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서서히, 내팽개쳐 뒀던 린의 손목을 붙잡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움찔, 어깨가 굳었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린의 결코 현명하다고 할 수 없는 머리가 푸슉 하고 생각을 멈추었다.
마키쨩은 그런 린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정말로 위험하니 끌어당겨 줬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린은 눈치 채고 있었다. 마키쨩의 뺨은 굳은 것 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부드러운 뺨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는 것을.
"…저기, 린."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순정 만화에서 봤던 것같은 대사를 하고는, 마키쨩은 린의 뺨을 양손으로 감쌌다. 못 도망가게 하는 거라고 린은 깨닫는다. 그렇지만 정말로 꼼짝할 수도 없었다. 붙잡혀 있는 것도 아닌데, 손 끝마저 움직일 수 없다.
"……린은, 린은 말이야…"
입술만 움직여서 억지로 말을 하려 했지만, 생각을 할 머리가 멈추었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그래, 이런 일에 의미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좋아해."
린을, 좋아해.
하지만 그런 거, 린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마키쨩의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눈이 린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니까 빨리 돌아가자고 했는데. "린은…" 이라고 말하던 중 말이 끊겼다.
"…………린도."
아직 봄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주위에는 다른 사람도 없었고, 게다가.
이런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서는, 우리가 키스했다는 것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애들한텐 비밀이야, 라고 마키쨩은 말했다. 린은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두기로 하였다.
마키쨩의 새빨간 뺨을 보는 건, 당분간은 린만으로 괜찮겠다고 생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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