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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ours 번역

꽃에 소망을 (다이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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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소망을

花に願いを


작가: ササミマヨ (https://www.pixiv.net/member.php?id=4831077)

원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8090705

번역: 낮-꿈(d4ydream)


작가의 말:

 다이요시입니다.

 HPT 드라마 파트를 듣고 망상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다이쇼 로망*이란 참 좋은 것이죠... 현대에 태어나 역경을 이겨낼 기지를 지닌 다이아와 요시코가 행복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백합 묘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둘이 사귀고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도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밌게 읽어 주세요.


*: 1930년대 일본풍의 문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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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걸 하나 찾았어요.

 쿠로사와 다이아, 그녀가 나 츠시마 요시코에게 보낸 메시지는 조금 당돌했다.


 액정에 비치는 시간은 아직 오전 열 시도 채 되지 않았다. 휴일을 맞이한 나는 아직도 졸림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말풍선 옆의 숫자를 지워 버린 이상은 별 수 없다. 내가 뭘 찾았냐고 되묻기가 무섭게 돌아온 답장은, 나와 관련 있는 재밌는 것을 하나 찾았으니 보러 와 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이런 소리를 했다면 뭔가 핑계를 대며 거절했을지 모르지만 다름아닌 내 영혼의 동반자— 달리 말하면 애인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 멍한 머리를 한 번 깨워 주고 몸단장을 마친 나는 다이아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것이 약 한 시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다이아의 방에서, 그 ‘재밌는 것’을 가져올 테니 기다리란 말에 순순히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쟁반을 든 사랑스러운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빛을 발하는 흑요석 같은 검은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마찬가지로 보석과 같은 비취빛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는 그녀는 학교에서는 학생회장으로서 팽팽한 활시위가 연상될 정도로 고지식하지만, 지금은 표정이나 몸가짐이나 긴장을 푼 것 처럼 보였다. 이런 모습은 나만이 독점하고 싶다고 생각해 버렸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요시코 양.”

 “그러니까, 요하네래도…….”


 그녀의 모습에 정신을 빼앗겼던 나는 늘 하던 반박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다이아는 시원한 보리차를 한 잔 내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받아들어 한 모금 입에 머금고는 컵을 테이블에 놓을 즈음에 다이아는 색이 바랜 사진과 일기장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이전에 다들 모여서 보물 찾기를 하러 갔던 거, 기억하시나요?”


 그 말을 듣자 곧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 나와 다이아가 속한 스쿨 아이돌 Aqours의 리더인 타카미 치카의 제안으로 다 같이 캠프를 하러 갔던 적이 있다. 그 때 우치우라에서 어업으로 유명한 명가 쿠로사와 가문의 선조가 숨겨 두었다는 보물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요란스레도 생긴 상자 안에는 낡은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고, 그것이 바로 보물이었다. 그걸 발견한 우리도 사진을 한 장 찍어, 그 사진과 바꿔 넣고 낡은 사진을 가져왔던 것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응, 기억 나는데…… 그게 그 때 그 사진이지?”

 “네, 그런데 제가 이걸 창고에 보관하려고 정리하다가 또 이런 걸 찾아냈어요…….”


 그렇게 말하며 다이아가 꺼낸 사진에 눈을 돌린다.

 사진은 두 장, 하나는 전에 본 것과 같이 Aqours와 닮은 아홉 명의 소녀가 미소짓고 있는 사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나와 다이아가 찍혀 있었다.


 “엇, 이, 이건……?”

 “역시, 눈치채셨군요. 이 둘은 아무래도 저와 요시코 양의 조상님인 모양이에요. 그리고 이걸 한 번 보세요—.”


 숨기는 기색 없이 놀랐다. 빛바랜 사진 속엔 나와 다이아의 선조가 찍혀 있었지만, 사진이 깨끗했다면 지금 당장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다이아는 눈 앞의 일기를 펄럭거리며 넘기더니, 한 장을 펴곤 내게 읽어 보라 재촉하는 게 아닌가. 남의 일기를 훔쳐본다 생각하니 양심이 찔렸지만, 호기심과 기대심—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연인의 눈빛에 패배한 나는 하는 수 없이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여기를 보면, 저와 요시코 양의 조상님은 한때 ‘에스’ 관계였던 모양이에요.”

 “에스……가, 뭔데?”

 “다이쇼 시대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용어예요. 여성끼리 연인 관계인 걸 가리키는 말이에요.”


 다이아는 무언가 요염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기습 공격에 심장이 쿡쿡 쑤시는 나는 그걸 떨쳐내려는 듯 일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기장엔 우리 둘의 선조들이 비밀스레 교제하던 이야기나, 서로를 향한 사랑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교환일기 같은 것일까.


 “……꼭 지금 저희들, 같네요. 피는 속일 수 없다는 걸까요.”


 과연, 다이아는 이걸 내게 보이고 싶었던 걸까— 그리 생각하니 기쁨인지 쑥쓰러움인지 형언키 힘든 감정이 가슴에 벅차올랐다. 그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아까 신경쓰였던 부분을 다이아에게 물었다.


 “그, 다이아. 아까 ‘한때’ 랬잖아? 그건…….”


 가능하면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이 돌아올 것이란 건 예상할 수 있었지만, 나는 물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을 권리가 있었다.


 “……생각하시는 대로예요. 한동안 친밀하고 깊은 관계로 지냈던 것 같지만, 그 때 가문의 당주에게 들통난 모양이에요. ……그래서 둘의 관계는 찢어져 버린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적힌 건 요시코 양의 조상님이 우치우라를 떠났다는 거예요.”

 “……그렇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마치 내 일인 양 기분이 착잡해졌다. 

 나와 다이아의 조상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랑하는 이와 원치 않게 작별하여, 가까이 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같은 여자끼리 사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권위 있는 집안의 외동딸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그래도, 사랑하는 둘을 세간의 눈이나 집안 사정으로 갈라 놓는다니 잔혹한 게 아닌가. 나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힘들게 다이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기, 다이아. 그 둘은…… 행복했겠지?”

 매달리는 듯한 목소리를 쥐어 짜내는 내 질문에 잠시 묵묵히 생각에 잠겼던 다이아는 마침내 신중히 단어를 선택하듯,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라며 다이아는 두 소녀가 비친 빛바랜 사진을 내게 다시 보여 주었다.


 “저희 조상님들은 그 뒤에 정원에 꽃을 심었다고 해요. 지금도 매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어요. 거기 그 복수초예요.”


 그렇게 말하며 다이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확실히 노란 꽃잎을 활짝 편 복수초가 있었다. 허나 그 이름을 들은 나는 깜짝 놀라 다이아에게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복수초는 독이 있지 않아……?”

 “어머, 알고 계시는군요, 요시코 양.”

 

 그러니까 요하네라니까, 하고 말할 기운도 없었다. 독초를 정원에 기른다니…….

 역시 다이아의 선조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가슴을 스치는 불안을 지워 버리듯 다이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말대로 잘못 먹으면 죽는 일도 있다고 하지만…… 제 조상님이 가문을 원망해서 그런 일을 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겁먹은 날 보고 재미있다는 듯 작게 웃음을 흘리며 다이아는 말하였다.


 “영원한 행복— 복수초의 꽃말이에요. 슬픈 추억이라는 꽃말도 있지만, 분명 조상님께선 행복하셨을 거라고, 그리고 후손들의 영원한 행복을 빌며 그 꽃을 심었을 거라고 전 생각해요.”

 “그럼, 좋겠네……. 요하네도 그렇게 믿고 싶어.”


 순수한 미소를 띄운 다이아의 모습에 나는 아까까지 품고 있던 두려움을 조금씩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리라.


 잠시 그 꽃발을 머리 속으로 되뇌이던 나는 아까까지의 불안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우리도, 언젠가 그렇게 헤어져야만 하는 걸까.”


 뭐라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쿠로사와 가의 장녀다. 그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내 불행으로 인해 이 관계가 탄로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괜찮아요, 요시코 양.”


 부드러운 목소리에 떨구었던 고개를 들자 다정한 빛깔의 비취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을 슬프게 하는 건 제가 모두 없애 드리겠어요. 쿠로사와 가의 장녀, 쿠로사와 다이아를 과소평가하지 말아 주실래요?”


 그녀의 장난끼 어린 목소리를 듣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짓고 말았다. 그런 나를 만족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다이아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혹시나, 누군가 저희 관계를 가로막는다면…… 같이 먼 곳으로 떠나요.”

 “뭐, 뭐어!?”


 평범한 여자가 생각치 못할 대담한 발언에 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저는 제 방식대로 ‘영원한 행복’을 손에 넣을 거예요. 그러니 요시코 양—“


 흔들림 없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말했다.


 “저와 함께하는 지금을 ‘슬픈 추억’으로 남길 생각은 하지 말아 주세요.”


 여기서 멋들어지게 한 마디 남겨 줬다면 꽤 볼만 했겠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를 어떻게 내뱉어도 진부한 소리가 될 것만 같았기에— 말 대신 몸을 그녀에게 던지듯 다가서서, 살짝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했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기다려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해질 수 있어. 반드시 행복해지겠어.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야 한구석엔 기나긴 세월을 따라 흘러 온 그녀의 탄생화 복수초의 금빛 꽃잎이, 우리를 지켜보는 듯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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