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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s 번역

내 옆자리 (린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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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자리

私の隣の席


글: さくら (http://www.pixiv.net/member.php?id=575585)

출처: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3613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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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길 정체가 조금 잦아들었던 시간이다.

 역에 들어오는 전차를 타고, 때마침 빈 자리에 앉아서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번 주는 왠지 과제가 많아서 피곤했다. 손에도 아직 미완성인 리포트를 한 장 쥐고 있었다.

 가능하면 오늘은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방 속에서 옅은 청색 봉투를 꺼내, 아까와는 다른 의미에서 한숨을 내쉰다.

 잘 쓰인 글씨로, '코이즈미 하나요 씨에게' 라고 적힌 봉투.

 그건 나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러브 레터였다.



 집 근처 역에 도착한 것은 좋았지만, 어쩐지 곧장 돌아갈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역 앞 커피숍에 들어가 가장 안쪽 자리에 앉는다.

 쓰다 만 리포트를 꺼내 써 내려가 보지만,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 생각만큼 여의치 않다.

 펜을 내던지고 등받이에 몸을 맡긴 채 가방 속에서 다시 그 옅은 청색 봉투를 꺼낸다.

 그 안에서 편지지를 꺼내, 오늘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르는, 나에 대한 마음이 적혀 있는 문장들을 눈으로 쫓는다.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었지.

 아침에, "좋아합니다" 라며 편지를 건내준 남자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본다.

 착실해 보이는 사람, 그것이 첫인상이었다. 요즘 사람들처럼 옷을 제멋대로 헤쳐 입지도 않고, 행동거지에서도 좋은 습관이 드러났다.

 딱딱해 보인다는 인상이 있을지는 모른다. ―실제로, 거기 있던 내 친구는 '고지식해 보인다' 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로서 말하자면 '우미쨩 같은 사람이네' 라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면.

 만약 사귄다면, 내겐 과분할 정도의 사람.

 ''……"

 만약, 사귄다면.

 내가 말해 놓고도, 그 말에 위화감을 느낀다.

 마음 속 가장 거친 곳을 손가락으로 긁힌 듯한, 그런 감각이다.

 그런 떨떠름함을 떨쳐 버리려는 듯 테이블 위의 아이스 커피를 손으로 잡는다.

 얼음이 다 녹아버린 그걸 마시다 보니,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이 떨렸다.


 "카―요찡! 오늘은 늦어?"


 소꿉 친구, 지금은 동거인이 보낸 LINE.


 "아니, 역 앞에 있어. 곧 돌아갈게."

 "저녁은 라면이면 되지?"

 "밥도 잊으면 안 돼."

 "알았다냐!  >ω</"


 언제까지라도 변하지 않는 이 대화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를 카요찡이라 부르는 것. 각자 좋아하는 음식. 메일이나 LINE의 말 끝에 따라붙는 이모티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바뀐 점이라 하면…… 내가 스스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걸 그만둔 것, 린쨩이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것, 린쨩이 여자답게 행동하게 된 것.

 하지만 그건 단지 주변에서 어른이라고 볼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근본적인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 앞으로도 변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짐을 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숍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건 러브 레터 관련된 것 뿐.

 고백받았다. 러브 레터도 받았다.

 나는 어떻게 할까. 아마 거절하겠지.

 그럼 왜 거절하는 거지― 거기서 생각이 미궁에 빠지고 만다.

 거절하는 이유, 그것을 물어도 희미하게 안개에 싸인 마음은 대답을 않는다.

 어쩌면 좋을까.

 복잡한 미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채, 나는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다녀왔어―"

 현관으로 들어가며 말하자, 발소리를 내며 린이 왔다.

 "카요찡, 잘 다녀왔어?"

 신발을 벗자 마자 끌여안겨지고 만다.

 "응, 잘 다녀왔어. 린쨩."

 그렇게 말하자, 린쨩은 내게서 갑자기 떨어져서,

 "카요찡, 무슨 일 있었어?"

 하고 묻는다.

 과연 오랫동안 만났던 만큼 사소한 변화라도 잘 눈치채는 것 같다.

 "음, 분명 있기야 있었지만……"

 애매하게 말하자, 린쨩이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린쨩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괜찮아, 나쁜 일은 아니니까.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린쨩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이게, 그 받았다는 러브레터야?"

 "응……"

 밥을 먹으면서, 고백받았던 일과 편지를 받은 일을 린쨩에게 이야기했다.

 먼저 밥을 다 먹은 린쨩은 내가 보여준 봉투를 들고,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가끔씩 물어보는 듯한 시선을 이쪽으로 보냈다.

 "읽어도 괜찮아."

 내가 이렇게 말하자 린쨩이 봉투를 열어 그 안에서 편지지를 꺼낸다.

 그리고 편지의 내용을 살피더니,

 "……러브 레터라는 거 정말로 있는 거구나."

 "나도, 조금 놀랐어."

 오토노키자카에 다니던 때에는 스쿨 아이돌로 활동한 적도 있고, 팬 레터를 몇 통 받은 적이 있었다.

 그중에는 '좋아합니다' 같은 마음이 담긴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돌에 대한 동경이 포함된 '좋아합니다' 이다.

 어디에도 μ's라는 글자 없이 코이즈미 하나요 한 사람을 향한 마음만으로 만들어진, 그런 편지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왠지, 우미쨩 같아."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나와 같은 느낌을 린쨩도 받았다는 점에, 무심코 되물었다.

 "응. 착실해 보이고, 착한 것 같아. 연인을 소중이 여길 것 같은 느낌이야."

 역시 린쨩이 보아도 그런 인상의 사람 같다.

 "의외로 카요찡이랑 잘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불쑥 그렇게 중얼거리는 린.

 진지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고 있는 린쨩을 보던 중, 린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저기, 린쨩―"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게 묻는다.

 이쪽을 올려다본 린쨩과 눈이 마주쳐서, 말이 끊긴다.

 린답지 않은 얌전한 표정,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빛.

 그 시선은 뭔가를 호소하는 것 같았다.

 "―욕실, 먼저 가도 돼?"

 입으로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다.

 "……그래. 린은 청소 하고 올게."

 "부탁할게. 설거지는 내가 해 둘 테니까."

 그렇게 말을 주고받고, 나란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터벅거리며 목욕탕으로 향하는 린의 등을 나는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먼저 목욕을 마치고, 방에서 머리를 말린다.

 드라이어 소리가 그치자 방 안은 정적으로 휩싸인다.

 "하아……"

 오늘은 정말 한숨 뿐이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고백에 대한 대답은 걱정거리지만, 그것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식사를 마친 린의 태도가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경직되었다고나 할까, 불쾌해 보였다고나 할까.

 아마 린쨩 스스로도 감정을 주체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신경쓰여 버려서,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뭔가 진정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문 너머로 터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린다.

 "카―요찡, 머리카락 말리고 싶다냐―"

 소리가 들리고 머지않아 목욕을 마친 린쨩이 방으로 찾아왔다.

 "음, 좋아. 그럼 앉아."

 그렇게 말하고 지금 내가 앉아 있던 의자를 비켜 준다.

 "네―"

 린쨩이 의자에 앉아 겨울 쪽을 향했다. 그걸 확인하고 드라이어의 전원을 넣어, 린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내린다.

 예전보다 조금이지만 자란 린쨩의 머리카락은, 그래도 역시 다른 여자와 비교하면 매우 짧아서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도 않고 순식간에 말라 버렸다.

 "자, 끝났어."

 "고마워, 카요찡."

 드라이어의 전원을 끄고 그렇게 말하자, 감사 인사가 돌아온다. 

 그리고 평소라면 잘 자라고 인사를 나누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을 린쨩이, 오늘은 그러지 않고 의자에서 일어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저기, 카요찡."

 "왜?"

 드라이어를 치우고 린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린쨩의 시선은 내가 아닌 거울 앞에 놓인 옅은 청색 봉투를 향하고 있었다.

 "답장, 어떡할 거야?"

 "음―……"

 말을 흐리며, 린쨩의 옆에 앉는다.

 "어떡할까, 라니……"

 그렇게 중얼거리고, 오늘 하루 쭉 생각했던 것을 입 밖에 낸다.

 "좋아한다고 말해 줘서, 고맙기는 했어. 하지만 왠지 실감이 잘 안 돼. '상대의 마음을 아직 잘 모르니까' 라는 이유가 있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가 누군가와 연인 사이가 된다는 것 자체가 전혀 상상이 안 돼."

 "그러면, 거절할 거야?"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거절할 이유도 떠오르지 않아."

 실감되지 않는데다 그럴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거절하는 건 왠지 성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들 하는 말이지만 '친구 사이부터', 일단은 그것부터 시작해 봐요, 그런 대답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

 "……그런가."

 침묵이 내린다.

 시계의 초침이 째깍이는 소리가 스무 번 정도 들린다.

 "그럼 친구가 되어서 이야기하거나 놀고. 그리고 만나도 될까 생각해 본다면, 그럴 거야?"

 린쨩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 온다.

 "지금은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이어서 할 '아마'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왜냐고 한다면, 린쨩에게 침대에서 밀려 넘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리, 린쨔―"

 "린은, 싫어."

 올려다본 내 시야에 비추어진 것은 골똘히 생각한다는 듯한 린쨩의 얼굴이었다.

 "쭉 생각했어.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었어. 린은 이렇게 카요찡과 함께 있는 것 만으로 좋았으니까. 만약 그 말을 해서 지금 관계가 망가져 버린다면,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쭉 생각해 왔어."

 "……"

 "하지만, 카요찡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면…… 그런 건, 싫어."

 괴로운 표정을 짓는 린쨩, 그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고,

 "좋아해."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고했다.

 "카요찡이, 정말 좋았어. 소꿉친구로서 뿐만이 아냐. 한 사람의 여자로써, 좋아해."

 그리고, 넘쳐흐를 것 같은 눈물을 훔치며,

 "싫다면…… 밀쳐."

 "뭐……?"

 "카요찡에게 있어, 린이 그런 상대가 아니라면. 카요찡의 마음 속 소중한 곳에 린이 없다면, 밀쳐 버려도 좋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내 볼에 댄다.

 가까워지는 린쨩의 얼굴.

 나는―

 "응……"

 살며시 린의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입술에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 닿는 몸에서 전해지는, 린쨩의 따스함.

 뺨에 떨어져서 따듯한 린쨩의 눈물.

 "으흣…… 아……"

 숨이 답답해져 입술을 때며, 비슷한 듯 숨을 몰아 쉬는 린쨩. 

 "카요찌―"

 나를 부르는 그 입을 검지로 막는다.

 "그렇게 부르는 건, 그만둬 줘."

 "응, 하지만……"

 "그거라면 평소와 다른 게 없으니까….. 특별한 일을 할 때에는, '하나요'라고 불러 줘."

 그렇게 말하고 미소짓는다.

 린은 한순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그렇다면…… 린도 '린' 이라고 불러 줘."

 아주 조금 부끄러운 듯이 그렇게 말해 왔다.

 그런 행동이 어째선지 어째선지 흐뭇했다.

 "응…… 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름을 부른다.

 린은 부끄러움으로 뺨을 물들이면서도,

 "……하나요."

 그렇게 대답해 온다.

 그것만으로 가슴 속이 말로는 못 할 정도의 마음으로 가득 차 온다.

 "린―"

 나는, 다시 한 번 린과 입맞춤을 나눴다.




 "하아……"

 그 때부터 흘러넘치는 마음을 서로 맞부딪혔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한밤중인 3시.

 행위의 여운으로 아직 약간 저릿거리는 몸을 움직여서 린의 위에 올라탄 채로 린을 껴안는다.

 "린……"

 이름을 부르고, 아마 이걸로 100번은 넘게 했을 키스를 다시 한 번 나눈다.

 "카요찡, 편지 답장에는 뭐라고 할 거야?"

 문득 평소로 돌아가서, 린쨩이 그렇게 물어 왔다.

 "응? 확실히 거절할 거야."

 "어라? 하지만 아까……"

 분명 아까와는 말하는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그건.

 "내가 고민한 건…… 사귈 맘은 없었지만, 뭐라고 거절할지 몰랐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까. 그러니 제대로 미안하다고 말할 거야."

 "린을 신경써서…… 아냐?"

 불안한 얼굴을 하는 린쨩.

 "아니, 틀렸어."

 내가 고개를 젓고는,

 "린쨩에게 고백받고 알았어. 내 옆자리, 내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는, 처음부터 린쨩이 앉아 있었어."

 그래, 그건 아마 오래 전부터였을 것이다.

 내 연인의 자리에는 언제나 린쨩이 앉아 있어서, 그러니 린쨩 이외의 누군가가 연인이 되는 미래 따위는 없을 테니 생각조차 않았다.

 누구와도 사귈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실감되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

 처음부터 하나요는 린쨩의 것이었으니까.

 "정말 좋아, 린."

 여러가지 이유를 대거나, 굳이 서로 마주보지 않아도 알고 있던 기분.

 그것을 말로 전하니, 린의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흘러 넘쳤다.

 "이제…… 울지 마."

 "기…… 기쁨의 눈물, 이야……!"

 그렇게 말하며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리는 린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아, 어떡하면 가능한 한 상처입히지 않고 그 사람한테 거절할 수 있을까.


 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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