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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모르는 너에게 (린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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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모르는 너에게

恋知らぬきみへ


글: はのちゃ (http://www.pixiv.net/member.php?id=473097)

출처: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309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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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우개에 분홍색 펜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누구도 그걸 건드리지 않은 채로 다 써버리면 사랑은 이루어져.



 그건 꽤나 오래된 것이어서, 아직 린이 빨간 책가방을 매고 다니던 시절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주술이다. 옆 반의 아이도 이 주술로 짝사랑을 끝냈다고 카요찡이 그 둥글고 큰 눈동자를 반짝이며 가르쳐 주었다. 좋네, 굉장하네, 주술이란 거 정말로 되는구나. 반짝반짝 눈부신 말을 하는 카요찡에게, 그때의 린은 한 마디도 대꾸해주지 않았다. 린은 그런 건 조금도 몰라서, 주위의 아이들이 얼굴을 붉히며 좋아하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곁눈질로 보고는 '밖에 나가 마음껏 노는 편이 재미있을 텐데' 따위를 떠올리며 스스로 엇나간 생각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결국, 린의 지우개는 쭈욱 새하얀 채였다.



 "왜 이제 와서 다시 유행하게 된걸까냐?"


 x, y, 그리고 숫자들, 가끔씩은 영어 단어들 잔뜩. 참고서를 펼치며, 린은 자기는 죽어라 머리를 쥐어 짜도 풀 수 없는 문제를 풀어대는 마키쨩에게 문득 물었다. 마키쨩은 안색도 변하지 않고 숫자들과 눈싸움을 하며, '글쎄.' 라고 짧게 답하였다.


 "반 아이들도 선배들도 모두 이 주술을 해 봤대. 마키쨩은 이런 거 믿어?"


 "…글쎄."


 "마키쨩 냉정하다냐."


 "그런 거에 흥미 없으니까."


 딸깍거리며 펜 끝을 누르면서, 분명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투로 내뱉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린도 같아서, 분명 이런 것 따위엔 조금도 관심 없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해도, 사귀더라도 헤어지더라도 그건 모두 린이 모르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 그렇기에 린은 모르는 채로 괜찮다고 생각했더니 어느샌가 순식간에 린은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의 주위의 아이들은 모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서,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혹은 누군가를 포기해서, 그렇게 모두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역시, 린은 아직 모르겠어."


 한숨을 내뱉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난 여전히 사랑 따위 어려운 것 보다는 몸을 움직여 뛰어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안 되는 걸까.


 "아마도. 하지만…"


마키쨩이 불쑥 중얼거렸다.


 "모두들, 이루어진다고 믿어서 하는 게 아냐."


그것은 린에게 말한다기보다는, 마치 혼잣말 같았다. 자기 스스로에게 타이르듯 하는 조용한 말.


 "믿지 않는다면 왜 하는 거야?"


분명 이 질문은 굉장히 유치했을 것이다. 사랑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의 특별할 것도 없는 작은 질문, 마키쨩은 어떻게 생각하겠어. 분명 또 무뚝뚝한 말이 되돌아오겠지, 그게 아니라면 틀림없이 제멋대로 혼자 고개 끄덕이고는 '글쎄' 하고 예상대로의 대답을 하겠지. 하지만 왤까,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마키쨩의 목소리는 여태껏 들어본 적 없으리만치 온화하고, 다정하고, 그리고 정말 조금이지만 슬프게 들렸다. 그리고 예상 외로 '하지만' 이라며 살짝 말을 잇는다.


 "그런 거에 의존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상대가 있다는 게 아닐까?"


 무심코 고개를 들어 마키쨩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뭐야."


 불만이라도 있냐고 묻는 듯이, 마치 사탕처럼 반짝반짝 아름다운 보랏빛 눈동자는 분명 린을 쏘아보고 있었으며 입은 재미없다는 듯이 부루퉁하게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니까, 그 마키쨩이, 흥미 없다고 내뱉은 네가 하필이면 그런 걸.


 "저기, 그래도 조금 놀랐어."


 "나는 이렇게 말하면 안 돼?"


 "그런 건 아니다냐."


 실례라며 코웃음치는 마키쨩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번.


 "그래도, 린은 사랑같은 거 잘 모르니까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조금은 신경쓰인다냐."


 "…한 번도 사랑이란 거 해본 적 없어?"


 마키쨩은 믿을 수 없단 듯, 눈썹을 찌푸리며 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해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야. 어쩔 수 없어.


 "없다냐. 마키쨩은 있어?"


 "…오히려 이 나이 먹고 첫사랑이란 건 드물다고 생각하는데."


 "좋아한다는 거, 어떤 기분이야?"


 "몰라."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마키쨩. 아아, 마키쨩은 린이 무엇을 물어도 무조건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의 기회를 놓친다면 분명 이런 이야기를 할 일은 다신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물을 것은 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으로, 마키쨩이 지금껏 모르는 체했던 이야기다. 그럴 텐데.


 "자 그럼. 만약 마키쨩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 주술, 해볼 거야?"


 그 때, 덜컹거리며 마키쨩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순간 책상이 흔들리며 그 위의 펜이나 노트, 지우개, 자, 필통이 바닥에 우르르 떨어졌다.


 "마, 마키쨩?"


 놀라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름을 부르자 마키쨩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는 "…미안해, 아무 것도 아냐." 라며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였다. 린도 서둘러 책상 밑으로 떨어진 것들을 주웠다. 아무래도 필통은 열려 있는 것 같고, 내용물은 어딘가로 떨어져버린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 갑자기 무언가가 데굴거리며 바닥을 굴러 와 린의 신발에 툭 부딪쳤음을 깨달았다. 보기에 그건 지우개였다. 어라, 하지만 저건 아까 마키쨩이 쓰던 것보다 꽤 작았다. 하지만 마키쨩의 일이니까, 꼭 두개 갖고 다녀야 하나보다 하고 의심 없이 지우개를 주워 들었다. 그러자 새하얀 지우개의 표면에 작은 분홍색이 눈에 띄었다. 그건 아무래도 글자같았고, 린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 글자를 보고야 말았다. 마키쨩의 쓰다 남은 지우개에 쓰여진 분홍색의 글자를. 누군가의 이름을. 그래도 그건 너무 눈길을 끄는 것으로, '아, 이건 혹시'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보았다. 보고야 말았다. 마키쨩이 당황하여 손을 뻗어 가리는 것 보다도 먼저 보였다. 그 이름은.


 "…봤어?"


 거칠게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는 마키쨩의 질문에 얼이 빠져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마키쨩은 꿀꺽 숨을 삼켰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눈동자가 서서히 투명한 물방울로 번져 갔다. 지금껏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한 채로 벽에 등을 기대어 스르륵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린은 무릎을 끌어안은 채 웅크려 앉은 마키쨩의 곁으로 휘청거리는 발길을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정말 무의식적으로 한 일이지만, 울고 있는 것은 괴로우니까, 괴로우면 슬프니까, 슬프면 고통스러우니까. 그래서 곁에 있어 줘야겠다니, 놀라울 만큼 유치한 이유인 것이 틀림 없다.

 킁, 콧소리를 내며 마키쨩이 중얼거린다.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린. 나는, 나는 네가….


 "이런 것에 의존하고,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


 그래. 지우개에 적혀 있던 이름. 호시조라 린(星空凛). 겨우 한자 세 글자에다가 정말로 자그마한 글자였지만 분명 소중한 마음을 담아 쓴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은, 희미하게 떨리는 글자 탓이 아니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태어나서 지금껏 그 누구보다 낯익은 이 세 글자는 마치 마키쨩의 손으로 쓰여져 이 때 처음으로 의미를 가지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는 쿵 하고 가슴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마키쨩."


 알았어. 바보인 린이지만 이제 겨우 알았어.


 "저기, 마키쨩."


 마키쨩의 푹신거리는 머리로 손을 뻗었다. 살짝 가볍게 건드리는 것 만으로 파르르거리며 손가락의 끝이 달콤하게 마비되는 것 같이 황홀했다. 아아, 정말. 왜 눈치채지 못 했을까. 이름의 한 글자라도 부르면 급급하게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젠 알겠어. 이런 거지, 마키쨩. 사랑의 의미를, 심장에 쿵 하고 울리는 첫사랑의 무게를, 린은 겨우 이해했어. 이해해서, 내 가방 속에서 분홍색 펜과 지우개를 꺼냈다. 5개의 한자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서 쓴다. 자기 물건에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쓴다. 조금 떨리고 창피하지만 그만큼 너를 좋아한다는 거니까 분명히 허락해 주겠지.


 "저기, 그거 보여줘."


 웅크린 채로 있는 마키쨩의 오른쪽 손바닥에 지우개를 살짝 얹어 준다. 똑똑히 봐, 린의 지우개에 분홍색 펜으로 적혀 있어, 너의 이름이.

 얼굴도 몸도 전부 화끈거려, 목도 따갑고 거기다 눈물까지 나오게 된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이렇게 큰일이라니,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마키쨩은 린에게 전해 주었으니까, 린도 말해야 해.


 "눈치채는 거 늦어서 미안해."


 마키쨩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자신의 손바닥에 있는 걸 보았을 때, 울고 있었을 얼굴을 슬쩍 찡그리고는,


 "정말이지, 너무 늦어. 너는."


 이라고 말하며 다시 우는 마키쨩을 보고 있으니 왠지 린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결국 둘이서 부둥켜 안아 바보처럼 울었다.



 아아, 분명히, 흘러 넘쳐 멈추지 않는 첫사랑의 물은 영원히 잔잔해지지 않을 것이다. 니시키노 마키라는 존재의 크기를 느끼며 15년치 사랑의 무게를 자각했다.



사랑을 모르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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