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μ’s 번역

다・정・함・의・소・리 (린마키)

---


다・정・함・의・소・리

や・さ・し・さ・の・お・と


글: 悠木里央 (http://www.pixiv.net/member.php?id=9954340)

출처: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4264088


---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난 건반을 두드린다.

 이마가 피아노에 닿을 듯, 진동을 확인하듯이 힘껏 두드린다.

 내지르지 못하는 내 목소리를 대신하여 두드린다.

 초조함도, 슬픔도 모두 손 끝에 담아 두드린다.

 이제 이런 일 따위 할 수 없으니까.

 더는 악기를 연주할 수 없으니까.

 음악도, 희망도, 꿈도, 아름다운 것들은 전부 소리와 함께 이 세상에서 지워져 버렸다.

 희미하게 이마와 몸으로 전해지는 진동과 내가 기억하고 있는 소리를 맞붙여서, 반짝이고 있었을 음표들을 그러모은다. 

 추억 속에 남을 소리를 잊지 않도록, 진정 지워져 버리지 않도록.

 이게 바로 나, 니시키노 마키의 자존심이다. 

 소리를 잃더라도, 자기를 혐오하게 되더라도, 이것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에 매달리고 있다는 소리는 듣기 싫기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있진 않다. 하지만 나는 소리를 그러모은다.

 나는 반짝였었다며, 한심하지만 그런 나 자신을 잊고 싶지 않아 피아노를 두드린다.

 조금도 즐겁지 않고, 오히려 건반이 손에 닿을 때 마다 마음이 산산조각나는 듯 분하다.

 세상 따위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랄 수록.

 이 귀는 이제 음악과 닿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누구도 없는 방과후는 언제나 피아노와 보냈다.

 떠오르는 곡들을 마구잡이로 늘어놓으며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멜로디에 잠긴다.

 즐거움이니 아쉬움이니 하는 것들을 알고 있지만 이제 내겐 다른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μ's에는 한 달 넘게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처음엔 모두가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 왔다.

 들리지 않는 나를 향해, 어딘가서 들어본 적 있는 문자를 써서.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내게 그런 건 단순히 동정에 불과해서, 모두가 그런 식으로 날 길들이듯 접근하는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동정할 정도라면, 너희들 귀나 내놔!"

 그런 헛소리를 지껄여 모두를 상처입히기도 하였다. 

 게다가 소리를 잃어버린 내가 더 이상 음악 유닛에 있을 가치는 없다고 판단해서, 탈퇴를 신청했다.

 누군가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어" 라고 말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모두가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는 모습을 그늘에 숨어서 지켜봐 봤자 즐거운 일 따위 있을 리 없다.

 상상해 보니 오싹해서, 난 절망했다.

 들리는 말에는, 내가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모두 모이지를 않는다는 것 같다.

 고소하다는 생각이 순간 마음에 스친 자신을 힘껏 후려 패고 싶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좋아질 것도 없다.

 나는 이제 존재 가치가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바보 따윈 이제 없다.

 내가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들은 부모님의 실망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게 전부인 걸까?

 나같은 불량품이 의사가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이돌도 의사도, 모두 내게서 멀어져 간다. 

 신은 깔끔하게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앞으로 땅을 기어다니며 흙탕물을 마시면서라도 살아가야 하나, 아니면 이 세상에게서 등을 돌리고 포기해야 하는 걸까.

 나는 피아노를 치며 아직 보이지 않는 결론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이런 건 꼴사납다.

 주머니 속에서 뭔가 얇고 무거운 것이 진동했다.

 아직 피아노 앞에 있고 싶었지만, 진동 모드의 휴대전화가 내게 하교 시간임을 알린 것이다.

 집에, 돌아가야 해.

 음악실에서 나온 나는 노을빛이 물드는 복도에서, 무릎부터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허탈감과 세계를 쳐 부숴버리고 싶은 초조한 마음을 끌어 안고 걷는다.

 그런 나의 옆을 한순간 불어온 바람이 붕 하고 스치고 간다.

 바람이… 아니다.

 노을빛 바람이 한참 뒤에 급하게 멈추어, 하늘을 나는 새처럼 손을 벌리고 한 바퀴 선회한다.

 날개를 사뿐히 접고 '그녀'는 생긋 하고 붙임성 있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린.

 누구도 내게 접근하지 않게 된 지금도 린은 매일같이 내 곁에 다가오고 있다.

 정말 바보인지, 매일 내게 공연히 화풀이를 당하면서도 조금도 배우는 게 없다.

 아니,

 지금 달려나갔던 건, 느닷없이 뒤에서 건드리면 내가 놀라서 화내니까 린 나름대로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배우고 있다.

 "마키쨩, 지금, 부터, 돌아갈 곳, 어디냥?"

 크게 입을 벌리고 눈을 빛내는 린은 수화를 섞어가며 내게 말을 걸었다.

 냥, 에서는 자기가 생각한 건지 주먹을 쥐고 귀엽게 하늘을 긁으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얼마 전까지는 린은 인사를 하고 나면 다른 수화는 나오지 않아 그대로 굳어버린 적도 있었지만 이제 일상 회화 쯤은 가능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보다 기억력은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뭐야?"

 자기 스스로 지껄이고 있어도 자기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나는 기억 속에만 의지해 말을 뱉어냈다.

 분명, 엄청나게 일그러진 소리겠지.

 물어보고 싶지 않아….

 그러고 보니 린 이외의 사람과는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

 일단 수화를 배우고는 있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에겐 모르는 다른 언어일 뿐, 사용할 기회 따위 없기에 필담(筆談)만을 하고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아서 다른 학생들의 발표나 교사의 수업에 소리나 수화는 없기에 칠판에 쓰인 글씨가 전부다.

 수화를 배웠다는 것으로 뭐가 달라지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린의 수화는 하루가 다르게 유창해졌다.

 가끔은 내가 모르는 것도 있을 정도로.

 바디 랭귀지인 것도 있으니, 분명 몸을 움직이길 좋아하는 린에게는 잘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린이 그대로 내 안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 무시할 수도 없는데다 그 무엇보다도 나는 화가 났다.

 내 고뇌 따위는 알지도 못하면서, 흥미 때문에 수화를 배우다니. 무슨 작정이야? 라고.

 "μ's를 그만둔 나와 더 이상 관계 따위는 없잖아. 날 내버려 둬."

 "관계, 없, 지는, 않아."

 아무리 괴로운 새벽을 맞이하더라도 변치 않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말했다.

 싫어, 싫다고!

 왜 옛날 그대로 변하지 않고 웃고 있는 거야?

 모두처럼 굳어버린 억지 웃음을 지어 봐.

 동정하는 눈으로 시선을 돌리는 거야.

 곤란하다는 듯이, 방해가 될 뿐이라는 듯이, 나를 마치 쓰레기, 불량품을 보는 눈빛으로 봐 줘!

 나를 싫어하란 말이야!

 이를 바드득 갈자 고통과 진동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 지금의 이 아픔과 굴욕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 준다.

 그 조명 아래 나섰던 흥분 따위, 이젠 어디에도 없다.

 뮤즈의 니시키노 마키는 더는 없다.

 "나는 뮤즈에서 나와서, 이제 너희랑은 관계 끝난 거야! 이상한 동정이라면 이젠 그만둬. 나에 대해 무엇 하나 모르는 너희가 나랑 친구인 척 하지 마!"

 머리로 피가 쏠린 나는 린을 떨어트리기 위해 지껄여댔다.

 산소가 부족하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소리를 잃어버린지 얼마 안 됐을 때처럼 평형 감각을 잃고, 시야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보이는 게 정보의 대부분이 되어 버린 내게는 조금의 변화도 더 크게 느껴진다.

 산소 결핍, 평형 감각 상실, 흥분, 그런 변화로 시야가 취한 듯이 흔들린다.

 기분이 나빠지며, 난 시큼한 침을 삼켰다. 

 린, 이제 그만해.

 나는 틀어박혀서 밖에 나오고 싶지 않아.

 "관계는, 끝나지, 않았어."

 린의 입이 분명하게 움직이고, 손으론 말을 하며, 눈은 똑바로 내 안을 비추는 듯 했다.

 빛이란 그 자체로 열기.

 차갑게 식은 나에겐 화상을 입을 수준의 열기다.

 "끝났다고 했잖아! 그럼 잘 있어!"

 "린, 잘 있지, 못해. 왜냐면, 린은, 마키쨩, 사랑하니까."

 비정상적인 슬로 모션으로 린의 입은 그 말을 한 게 분명했다.

 이번에는 시간이 마치 날아가는 것 처럼 흘러, 나의 손바닥에 터지는 듯한 충격이 닿았다.

 나는 린의 뺨을 때렸다.

 저질러 버렸다고 생각한 때는 이미 늦어서 린의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눈은 동그랗게 뜨여 있었다.

 손이 저리고 가슴이 찌르는 듯 괴로웠다.

 그 다정한 린을 상처입힐 권리 따위 내게 있을 리 없는데, 난 무슨 일을 저질러 버린 거지.

 그래도 그걸로 괜찮다.

 혼자가 된다.

 혼자가 되니까… 그러니까, 린, 나를 싫어하게 되어 줘.

 그런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울지 말란 말이야.

 "저기, 린은 있지."

 린이 떨리는 입술과 수화로 말을 계속한다.

열심히 움직이는 린의 손에 떨어지는 눈물이 몇 번이고 튀겼다.

 "마키쨩, 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라. 그러니까, 이야기, 잔뜩, 하고 싶어. 그래서, 수화, 배웠어. 마키쨩의, 즐거운 일, 이나, 괴로운 일도. 린, 알고 싶어. 모든 걸. 그러니까, 많이, 이야기, 하자?"

 "그만둬! 린, 나를 싫어하란 말이야! 나를 버려! 너를 울게 만들 권리 따윈 내게 없어. 화가 나서 어서 나를 싫어하게 되란 말야!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나는…" 

 내가 린의 어깨를 부여잡고 외쳤다. 그리고는, 울고 말았다.

 "또, 린을 상처입혔어…"

 왜 내가 우는 거야?

 이런 걸로 용서받을 리가 없는데.

 이렇게 다정한 애를 상처입힌 내가 울어 봤자 어리광일 뿐이다.

 린은 내 어깨를 살짝 눌렀다.

 린의 그 눈은 "들어 줘" 라고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작은 틈으로 린은 수화를 계속했다.

 "사랑해, 라는 말은, 주먹을, 보로, 감싸서, 부드럽게, 쓰다듬는 거야. 주먹은, 아기의 머리고, 보는, 어머니의 손바닥, 이래. 저기, 마키쨩. 린은 마키쨩이, 웃는 걸, 원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해.


 린의 미소는 대체 왜 이렇게나 날 안심시키는 걸까?

 의존하고 어리광부리며, 제멋대로 남에게 마음을 맡긴다.

 분명 나는 지금, 시끄러울 정도로 흐느끼고 있을 것이다.

 복도를 울릴 정도로? 아니, 학교에 울릴 정도다.

 강해져야만 해, 멋있어져야 해, 누군가를 말려들게 하지 않아야 해. 비참해지지 않아야 해. 나를 수 없이 죄어 오던 세계가, 나 자신이 망가져 가자, 녹아내린다.

 나는 살짝 태양에 안겨, 또 눈물을 쏟아낸다.

 아, 소리다.

 이건, 틀림 없이 다정함의 소리.

 나는 이런 소중한 소리까지 잃어버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린이 내 곁에 있어서.

 μ's의 일원으로 있을 수 있어서.

 "저, 저기, 린."

 엉망이 된 젖은 얼굴로 나는 아기보다도 서툰 말로 린에게 말했다.

 "나, 굉장히 힘들었어. 무서웠어. 그러니까, 저기… 있잖아… 위로해 줘."

 "알았다냐, 마키쨩! 린 손은 약 손, 아픈 건 다 날아가라!"

 수화는 아니었지만, 린의 마음이 흘러 넘치는 움직임에 그 의미는 뻔히 드러났다.

 린은 정말 대단해.

 "어떠냥?"

 "있지, 조금 괜찮아졌어. 그래도 아직 아프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는 린의 손을 잡고 내 머리로 이끌었다.

 린의 손이 느긋하고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랑해.

 따뜻해서 천천히 가슴에 내려앉는 린의 다정함.

 좀 더 느끼고 싶어서, 린을 꼬옥 부둥켜 안자 린도 다시 안겨 주었다.

 내 안에서 선명한 소리가 쨍 울려 퍼졌다.

 "린."

 "왜 그래?"

 "미안해."

 "마키쨩."

 "왜 그래?"

 "고마워,"


 아아, 신이시여.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제게서 무엇을 빼앗으시더라도 좋습니다.

 그러니, 부디 린에게선 그 무엇도 빼앗지 말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