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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네가 말하는, 그 운명이란 게 없었더라면
もし君が言うところの、運命なんてものがなかったら
글: 耀斗 (http://www.pixiv.net/member.php?id=1660177)
출처: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4948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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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존재를, 예를 들어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자. 그러면 나와 그 애의 인연은 대체 누구이며, 무엇이었던 걸까. 그저 동급생일 뿐이라며 주저 없이 결론지을 정도로 미덥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얄팍한 관계를 3년간 계속 이어온 나와 그 애 사이에 인연 같은 것이 있다니, 유감이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그 애의 손을 건드려 본 적도 없었고, 그 애는 내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 전화번호도 몰랐고 생일도 몰랐다. 집 위치마저도. 내 친구는 잊어버린 물건을 돌려주러 딱 한 번 방문한 적 있다고 하지만, 그것 뿐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봄, 우물쭈물하다가 동아리 신청을 놓쳐 버린 내 친구는 내 덕으로 육상부에 들어왔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라운드로 나오지 않게 되었다. 전부터 알려졌던 폐교 이야기가 마침내 정식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일학년의 여름, 첫 경기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여자 단거리 5미터 부문에서 3위의 성적을 세운 나는 내 방의 벽에 내동댕이쳐 산산조각난 트로피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 소식을 듣고 있었다. 보기 흉하다. 아슬아슬하게 3위, 스타트 대시에 실패해서. 이번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 왠지 선명히 기억난다. 친구를 뒤따르듯 그라운드를 떠난 것은 더 나중의 일로, 2학년 봄의 일이었다.
"안녕, 니시키노."
목적이 주어지지 않는 실은 생각보다 깔끔히 끊어져 버린다. 의지를 가지고 매달리고, 땅을 기어서 흙먼지를 마시더라도 계속하고자 하는 노력을, 15살의 나는 조금도 들이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귀가부가 되어 방과후마다 친구와 놀러다니는 생활은 꽤나 재미있었지만, 그만큼 어딘가 모자랐던 것도 사실이다. 뻗을 만큼 뻗었으면서도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린 내 실.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은 채로 끝나는 건 분명 굉장히 슬픈 거겠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지만.
"……안녕. ……그러니까,"
"호시조라야. 호시조라 린."
"아……호시조라. 그래, 그랬었지. 미안해. 오늘은 일찍 왔네."
"주번이거든. 이제 일지같은건 쓰지 않지만, 그 왜, 인생 마지막 주번이잖아. 오늘 정도는 제대로 해 볼까 해서 말야."
"그래. 그럼 너한테 맡기면 되겠구나."
천천히 걸어 들어간 교실은 마치 처음 보는 곳 같았다. 아직 아무도 쓰지 않은 칠판과, 정연히 늘어선 책상들. 고요하고 긴장된 듯한 새벽 공기. 마음껏 들이쉬어 본다. 나쁘지 않다. 나쁘긴 커녕 오히려 맛좋다. 몰랐다. 이렇게 아침 일찍 학교에 온 건 지금껏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마음 속으로 솟는 약간의 후회를 떨쳐 버리려는 듯 나는 흰 분필로 칠판에 오늘 날짜를 적는다. 3월 9일, 수요일.
니시키노는 창가에 서서 입을 다문 채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누군가와 메일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그러고 보면 나는 그 애가 무슨 동아리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떠올렸다. 피아노를 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취주악부나 음악 관련일지도 모른다. 입학한 직후의 봄, 점심시간이 될 때마다 홀로 음악실로 향하던 뒷모습을 떠올리자 코 끝이 찡해졌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그 정도로, 앞으로 더 알 수 있는 것도 이 이상 없을 것이다. 알고 있다. 곧 잊게 될 것 만이, 어떻게 해도 잊을 수가 없다. 알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 설마 니시키노, 린이 해야 할 일을 해 준거야?"
"별로, 그런 거 아냐."
"하지만 지금, '맡기면' 이라고 했잖아. 아, 아…… 린은, 실은 당번 일이 어떤 게 있는지 잘 몰라. 미안해. 그, 지금부터라도 도울 테니……"
"내 맘대로 한 일이니까 상관 없어. 게다가 벌써 끝났어."
태양빛을 받으며 남모르게 그림자를 만드는 니시키노의 옆, 창가에 설치된 사물함 위로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다. 언제 놓인 건지도, 누가 가져온 건지도 모르는 꽃. 그렇지만 아직 꽃봉오리조차도 나있지 않다. 단순한 흙 덩어리이다.
물 주기, 라고만 중얼거리는 소리가 몹시 습해진 온도의 귀를 빠져나갔다.
"그저 흥미로 하는 일이야. 졸업할 때까지 필까 해서 말야. 하지만 아직 이런 정도고, 역시 늦은 것 같아. 선생님도 무슨 꽃인지 모르겠다고 하셨고. 어쩐지 이 학교는 대체로 무책임해. 그런 것 같지 않아? 뭐, 별로 상관 없지만."
"……니시키노."
"왜?"
"그럼, 니시키노는 이거 매일 했던 거야?"
"……뭐, 그랬지."
"그렇구나. 대체 무슨 꽃이었던 걸까냐?"
니시키노가 투덜거리며 창문 밖으로 내린 물뿌리개에서 완만한 물줄기가 흘러 나와서, 그 김에 무지개라도 만들어지는 걸까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물뿌리개에 들어 있던 물은 몇 초만에 깨끗이 비워져 버렸다. 어째선지는 모르지만 비슷하다고 느꼈다. 죽은 듯 고요하게 서서히 숨이 끊어져 가는 이 학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만날 수 없는 후배들. 말도 나누지 않았던 선배들.
누군가가 오는 듯한 기척은 아직 없다.
"니시키노는,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마키야."
"그랬지."
"뭐야. 그게 어때서."
"마키쨩, 우린 왜 더 빨리 친해지지 않았던 걸까."
린의 이름은 린이라고 해.
호시조라 린이야, 니시키노 마키쨩. "좋은 이름이지?" 하고 거의 억지로 웃어 보이자, "자기가 직접 말하는 거야?" 라며 웃고.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좋은 이름이네, 린."
"고마워."
"별이 뜬 하늘(星空), 나도 좋아해. 그래, 이번에 같이 보러 가지 않을래?"
린.
그 애 생일은 사월이라는 것 같다. 몇일인지는 모른다. 교실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해, 마지막 조례가 시작된 때에, 나와 그 애는 다시 흔한 동급생이 되어 있었다. 한 반 뿐이 없는 졸업식은 무사히 끝을 맞아, 나는 학교를 십 초 정도 바라보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혼자서 밤하늘을 바라볼 것이다. 그 애의 전화번호도 묻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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